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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사태 남산의 부장들 실제인물 - 김재규, 차지철, 김형욱 본문
1979년에 10.26사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라는 이 사건의 인물들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 실제인물입니다. 김재규, 차지철, 김형욱이라고 하지 못하고 김재평, 곽상천, 박용각이라는 이름으로 나오지만, 10.26사태를 아는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현대사를 잘 모른다면 이 세 인물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과 전두환, 그리고 그들의 관계와 배경 등을 설명했습니다. 10.26사태 배경 정리와 네 사람의 등장, 배경, 평판, 결말 등의 정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재규 10.26 사태 정리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빼앗았습니다. 그 후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어서 죽을 때까지 대통령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1979년 '10.26 사태'로 암살되었습니다. 이때 박정희를 암살한 사람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입니다. 그는 1980년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당했습니다.
재판에서 김재규는 민주주의를 위해 거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암살하지 않았더라면 5.18 광주학살이 부산, 경남에서도 일어날 뻔했고, 그의 암살로 인해 장기독재 시대가 무너진 것이니 한국 민주주의의 큰 전환점을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동기는 의문에 싸여 있습니다. 김재규는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을 주도할 정도로 박정희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격주의 차지철과의 갈등이 매우 심했기에, 김재규와 차지철의 권력 암투로 인한 우발적인 암살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습니다.
그 밖에도, 김재규 본인의 말대로 정말 독재를 끝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고, 미국의 개입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가 암살 후 정권을 잡으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엔 당시 그의 대처가 너무나도 허술했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실제인물(실존인물)들은 1979년의 중앙정보부와 경호실 등 국가 권력의 실세들입니다. 박정희에게 붙어서 국민의 죽음을 하찮게 여기던 '차지철', 김재규 이전에 중앙정보부 부장을 지냈다가 박정희에게 암살당한 '김형욱', 그리고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 박정희식 독재를 따라한 '전두환'이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10.26사태로 박정희 독재가 무너질 때, 동시에 권력 핵심 인물 세 명이 사라지니 권력의 공백이 컸습니다. 국민들은 이제 해방이 될 것이라고 희망에 찼지만, 그 틈을 타서 정권을 훔친 세력이 전두환 전 대통령 독재 세력입니다.
남산의 부장들 실제인물
박정희 시대에는 반대자들을 감시하고 끌어다가 폭행, 고문을 해서 처치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앙정보부입니다. 지금은 안기부로 바뀌었으나, 2016년까지만 해도 보수당이 집권하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시도가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보수주의가 "민주주의(국민이 우선인 정치)"보다는 박정희 시대의 "통치(권력자가 국민을 지배하는 것)"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앙정보부는 서울 남산에 있었습니다. 즉, <남산의 부장들> 뜻은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와 그에 얽힌 권력 부서의 부장들을 의미합니다.
차지철은 공수특전단 중대장이었는데, 나라를 지켜야 할 부대를 이끌고 5.16 쿠테타를 정권을 빼앗는데 이용했습니다. 그 후 그는 경호실장까지 올랐습니다. 김형욱은 김종필과의 친분으로 인연이 닿은 후 박정희의 큰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 후 사령부 작전참모 등을 지내다가 쿠데타를 같이 했고, 중앙정보부장까지 올랐습니다. 김재규는 육군대학교 부총장을 하던 중 5.16 쿠데타 세력에게 반대세력으로 몰려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크게 신임하여 중앙정보부장까지 올랐습니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키워준 '하나회' 조직을 이용해서 보안사령관이 된 뒤, 10.26사태를 발판으로 대통령까지 올랐습니다.
차지철, 김형욱, 김재규 성격과 인물
남산의 부장들 실제인물의 평판을 찾아보면 각각의 특징이 있습니다.
차지철은 결벽증세가 있으면서도 다혈질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액자가 5mm만 삐뚤어져 있어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며, 박정희의 총애를 믿고 다른 기관의 권한을 월건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권총을 꺼내 들고 위협까지 했으므로 주변인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계속 번지자, 박정희에게 학생들을 탱크로 깔아뭉개 버리자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10.26 사태가 있기 전, 그는 김재규를 계속 무시하며 자신만 박정희의 진정한 심복이라는 듯 성질을 부렸다고 합니다.
김형욱은 계파 싸움을 멀리했으므로 처음엔 쿠데타 세력과도 멀었었습니다. 그러나 말없이 최선을 다하는 능력 때문에 박정희의 믿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중앙정보부 부장에 오르면서 독재정권의 인권유린에 참가합니다. 재판도 없이 학생들을 사형시켜버린 '인혁당 사건'이 그의 재임 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점점 권력에서 멀어진 그는 외국에서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해버렸습니다. 그런데 1979년 10월 파리에서 갑자기 실종된 후 의문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나온 주장에 의하면, 그는 납치당하여 시신이 분쇄기에 갈린 후 닭모이로 주어졌다고 합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실제인물 김재규는 평소 성격이 온순하고 우직하게 일하는 스타일이지만, 갑자기 욱하고 폭발하는 성격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꼼꼼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도 있으나, 중앙정보부의 각종 사찰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부마사태 등 정치탄압과 차지철 편을 드는 박정희을 보면서 회의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김재규는 김대중, 김영삼, 장준하 등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재규의 주장대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암살을 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확실한 것은, 옳지 못한 충동질을 하는 차지철을 박정희가 편들어서 문제가 커진 것입니다.
남산의 부장들 실제인물들의 관계를 보자면, 박정희와 김재규가 육사 2기, 김형욱은 육사 8기, 전두환은 육사 11기, 차지철은 육사 14기에 해당하는 해에 포병학교를 나왔습니다. 박정희와 김재규의 기수는 같지만, 박정희가 고향 선배였기에 많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또한 입학 기수로는 전두환이 앞서지만 차지철이 먼저 승진하여, 차지철의 파워가 막강했었습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차지철과 함께 몰락한 후, 1981년 '안기부'로 바뀌었으며 1999년 다시 '국정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 과거 회귀 성향을 보이고, 진보당이 집권하면 조금이나마 개혁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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