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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2)
스토리이알피
모두먹기패와 이지함 [이지함의 걸인청과 조선 시대 모두먹기패란 이야기] 모두먹기패란 뜻은 말 그대로 모두 먹어버리기 때문에 불린 이름입니다. 마치 좀비떼처럼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는 이들 때문에 조선시대는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때 토정비결의 '이지함'이 나타나서 '걸인청'이란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선조실록과 목심심서, 토정유고 등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서 이지함의 모두먹기패 대처 방법을 알아봅니다. 걸인청이란 걸인청이란 뜻은 "거지에 대한 일을 하는 관청"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1991년 '소설 토정비결'이 출판된 후에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어떻게 불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선 선조 11년에 기록되어 있는 모두먹기패와 걸인청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 말을 써야..
세종대왕은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생각한다고 해도 출중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금 문제를 해결하려던 중에 세종대왕은 최초의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무려 17만 명의 백성이 참여한 여론조사를 통해 세종은 비로소 법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15세기에 백성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국가 시스템을 계획하였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세종의 최초의 여론조사 동양이든 서양이든 군주가 백성의 생각을 묻는 경우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록상으로 현대의 직접적인 최초의 여론조사는 1824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15세기 조선시대에 여론조사라는 것을 했었습니다. 이때가 세종 12년, 1429년의 여론조사입니다. 건국 된 지 겨우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