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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의 걸인청과 조선 시대 모두먹기패란 이야기

Storyerp 2020. 11.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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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먹기패와 이지함

 

 

kiss7.tistory.com / ⓒ 드라마 한 장면 

 

[이지함의 걸인청과 조선 시대 모두먹기패란 이야기]

모두먹기패란 뜻은 말 그대로 모두 먹어버리기 때문에 불린 이름입니다. 마치 좀비떼처럼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는 이들 때문에 조선시대는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때 토정비결의 '이지함'이 나타나서 '걸인청'이란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선조실록과 목심심서, 토정유고 등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서 이지함의 모두먹기패 대처 방법을 알아봅니다.



걸인청이란

[온양신문 자료 사진] 이지함의 걸인청과  조선  시대 모두먹기패란 이야기 / ⓒ ionyang.com 

 

걸인청이란 뜻은 "거지에 대한 일을 하는 관청"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1991년 '소설 토정비결'이 출판된 후에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어떻게 불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선 선조 11년에 기록되어 있는 모두먹기패와 걸인청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 말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선조는 1567년에 왕에 올랐으니, 선조 11년이면 1578년쯤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4년 전쯤인 시대입니다. 이앙법이 퍼진 시기는 광해군 이후이니, 안 그래도 심했던 조선 시대의 보릿고개를 더 심한 시대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충남 아산의 온양 고을을 예로 들지만 전국적으로 이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

계속되는 흉년으로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봄이 되자 벌써 곡식이 떨어지고 '모두먹기패'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모두먹기래란 뜻은 먹을거리가 떨어진 백성들이 아무 데나 침입하여 곡식을 먹어 치운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빈민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먹기패란​

 

[좀비떼처럼 전국을 휩쓸었다] 이지함의 걸인청과  조선  시대 모두먹기패란 이야기 / ⓒ KBS 

 

이들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떨어지자 아직 양식이 남은 다른 집에 몰려가서 식량을 모두 먹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양식이 떨어진 그 집의 가족들도 모두먹기패가 되어 또 다른 집을 덮쳤습니다. 이집 저집으로 거지떼가 몰려들어 다 먹고 나면 다른 지역으로 몰려가서 남은 식량을 뺏어 먹었습니다.

대궐 앞까지 모두먹기패가 몰려들기도 했는데, 집도 절도 없는 유랑민들이다 보니 미리 단속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을의 관리자들은 모두먹기패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면 엽전을 풀거나 곡식을 옮겨 와서 풀든지 했지만, 모든 수령들이 다 그러는 것도 아니었고 나라는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모두먹기패가 나타나면 마치 좀비떼가 나타난 것처럼 막아도 소용이 없고 막무가내로 먹어버리고 가버리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한편 이때 충남 아산의 온양 고을에는 토정 이지함이 원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범한 재주를 가졌으나 기인 중의 기인이었습니다. 경사자전을 통달하고도 평소에는 관직에 관심이 없었던 그였습니다. 쇠로 만든 갓을 가지고 다니다가 배고프면 아무 데서나 갓에 밥을 끓여 먹으며 전국을 돌아다니던 그였습니다.

그래서 토정선생이라고 불리던 그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56세가 돼서야 관직에 들어섰고, 61세에 아산현감으로 부임했습니다.



토정 이지함의 일화

[토정 이지함 표준 영정] 이지함의 걸인청과  조선  시대 모두먹기패란 이야기 / ⓒ seouland.com 

 

그런데 이때 아산에 모두먹기패란 거지들이닥쳤습니다. 역시나 마을의 먹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이지함은 걸인청이란 것을 짓도록 하고 모두먹기패를 모조리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수십 짐씩의 지푸라기를 가져다가 짚신을 만들라고 하며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이유원'이 지은 '임하필기'를 보면, 유랑하는 백성들이 누더기에 구걸하는 꼴을 불쌍히 여기고 커다란 집을 지어 수공업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토정 이지함은 짚신을 만들게 해서 내다 팔도록 했으며, 그렇게 일한 돈으로 쌀을 마련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익이 남으면 천을 사다가 옷을 만들도록 했더니 의식주가 다 해결되어 번듯한 사람들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지함의 걸인청은 현재의 영인초등학교 건물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백성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모두먹기패를 거둬먹인 이지함의 일화는 현대의 정치인들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이지함은 사람의 운세를 점칠 수 있는 책인 '토정비결'을 지은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율곡 이이는 그를 가르켜 기질을 이상하게 타고나서 춥고 더운 것은 물론 배고픈 것도 능히 견디는 인물이라고 했었습니다. 천성이 재물도 여색도 탐하지 않는 인물이며 위태로운 지경에도 별로 놀라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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